top of page
  • hm29371
  • 2021년 7월 11일
  • 2분 분량

얼마 전, 어느 학교에서 선생님을 대상으로 ‘스포츠분야 인권교육’을 마치고 나오는데, 어느 분께서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데....”라고 말씀을 하시며 제 옆을 지나가십니다. 마음은 무겁고 뒤통수는 뜨끈뜨끈하고 천근만근의 무게를 가슴에 얹고 돌아왔습니다.


빨래는 세탁기가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세탁을 세탁기가 합니다. 세탁물을 옮기고 세탁기에 넣고 세탁기의 기능이 끝나면 꺼내서 널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람의 움직임이 있어야 합니다. 반듯이 알아야 할 것은 그 세탁물의 주인이 누구이고, 세탁기 기능 외에 움직임을 하는 사람은 누구냐는 것입니다. 자신의 세탁물을 자신이 직접 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거절을 할 수 없는 사람,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말할 수 없는 사람, 동의를 온전하게 실현할 수 없는 사람) 부탁을 가장해서, 시킨 것 이라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없는 행위입니다.


부탁과 강제적 시킴의 행위 구분이 어려울까요?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 차이가 어떠하게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진행했던 ‘스포츠분야 인권교육’의 내용에서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스포츠 인권침해 실태조사 결과 중 대학교 운동선수 인권실태 조사결과를 이야기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원하지 않는 각종 심부름, 빨래, 청소를 대신 한 적이 있다(29%),’, ‘부당하게 자유시간, 외출, 외박을 제한 받은 적이 있다(26%)’, 헤어스타일, 메이크업 등을 제한 받은 적이 있다(25%) 순으로 빈번했음


- 생활통제의 가해자는 ‘심부름, 빨래 등’의 경우 선배가 주 가해자였으며, ‘자유 시간·외출·외박 제한, 헤어스타일 등 제한의 경우’ 코치가 주 가해자였음 」


국가인권위원회는 ‘자기결정권 제한 등 생활통제’로 명시했습니다.


자기 자신의 세탁물을 세탁하는 빨래에 대해서 사람들은 언제쯤 학습하게 될까요? 저는 초등학교 고학년쯤 부터였습니다. 그리고 아주 어려서부터는 자기가 스스로 해야 하는 지극히 사적인 일에 대해서 배우며 자랐습니다.

저는 ‘암묵적 위계구조, 그 닫혀진 섬’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기숙사에서 “타인의 빨래를 왜 내가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는 성인이고 거절을 하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거절을 표현할 수 없는 관계, 말할 수 없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는 문화, 구조를 갖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분위기와 누군가 내게 계속적으로 원하지 않는 것을 시켜도 말할 수 없고, 비동의를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문화 속에서 머물고 있는 권력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통제하고 제한하면서 자신들의 지극히 사적인 일조차 자신의 손으로 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당연하게 말합니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데....” 세탁기의 기능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물론 아주 어린 영아기의 아동은 모르겠지만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어린이도 알 수 있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말하는 어른, 무엇이 잘못이라고 꼬집어 이야기해야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세세하게 설명해야 알게 된다면, 어른이 아니라 무엇을 배우기 시작한 걸음마의 아이로 표현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권력이라는 단어 속에서 그 하등의 쓸모 없는 노예적으로 사람을 부리려는 사람에 대한 존중 없는 사고가 인식이 그 닫혀 진 섬을 만들었고, 여전히 변화하고 싶지 않으려는 비인권적 행위입니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그 모든 행위는 시키지 않고 자기가 스스로 알아서 합니다.”로 바꾸어 말해야 합니다.


오늘도 저는, 스포츠현장이 성적만이 아니라 웃고 즐기면 자신의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고 그 땀에 박수를 보내는 ‘스포츠는 인권이다’가 실현되길 바라며 스포츠분야의 인권교육을 시작합니다.

*이 글은 서울특별시체육회에서 발간하는 서울스포츠 2020년 8월호에 실린 글을 옮긴 것입니다.




체육계가 구조적으로 키워온 ‘폭력’이라는 괴물


글 / 허정훈


초·중·고, 대학, 직장 운동부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대물림되는 체육계 폭력 문화는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수 없다. 의리의 카르텔로 뭉친 체육계의 폐쇄적 구조, 오랫동안 공고히 쌓아온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 등은 ‘체육계 폭력’이라는 괴물을 거대하게 키워왔다. 선수, 부모, 지도자 그 누구도 벗어나지 못했던 괴물을 없애려면, 국가주의 엘리트 스포츠 구조를 해체하고 대한민국 스포츠 패러다임을 뿌리부터 바꿔야 한다.



폭력의 일상화와 세습: 라떼는 말이야~


1980년대 초 군사정권 시절, 태권도 체육 특기자로 입학한 어느 중학생은 하루도 거르는 법 없이 훈련했고, 하루도 거르는 법 없이 구타와 원산폭격(머리 박기)을 당했다. 그는 1980년대 말 대학생이라는 자유를 느끼기도 전, 집합과 구타와 욕설이 난무하는 역설적인 ‘지성의 상아탑’에서 체육을 전공하게 된다. 그때는 이를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박힌 군사문화의 탓으로 돌릴 만했다.


2000년대 중반 그가 대학생을 가르치게 된 때 학생 선수들은 아직도 폭력적인 문화에 방치되었고 운동선수들의 인권침해는 일상이었다.


그즈음 강장호라는 대학 신입생이 신입생 훈련 중 가혹 행위로 인해 사망했고 몇년 후 어느 고등학교 야구선수는 유서를 남기고 자신의 앳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2020년 6월 직장 운동 부에서도 같은 사건이 반복되고 말았다.


스포츠계에서 폭력, 성폭력, 갑질과 인권침해는 일상적이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 실태조사 결과에서 주목할 점은 초·중·고 학생선수는 물론이고 성인이 된 대학생 선수, 직장 운동 선수들도 예외 없는 피해자였다는 점이다. 피해를 경험한 비율은 상상외로 높았고 매주, 매일같이 자주 발생했으며, 다양하고 광범위한 형태로 나타났다.


주요 가해자는 감독과 코치, 선배 선수였고, 가해는 연습장과 합숙소에서 비일비재하게 이뤄졌다. 선수들은 보복과 불이익이 두려워 용기를 내기 힘들었고 설사 용기를 냈다 하더라도 책임 있는 사람들은 가해자 편에 서있었다.


20년 전에도 그랬고 10년 전과 달라지지도 않았다. 이제 오래된 군사문화 탓도 못할 일인 것은 군대마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일부 체육인들이 ‘나 때는 더 했어’라며 꺼내드는 ‘라떼 타령’은 더 할 말도 들을 말도 안 되고 위로도 못 된다. 그들은 방조자와 동조자의 그 어디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 속에 나와 우리가 있을 수도 있다.



근본 원인은 재차 말하지만, 스포츠계 구조적 문제


스포츠계 폭력적 문화와 인권침해는 폐쇄적 구조에 기인한다. 섬에 갇힌 운동부는 감독, 시·도체육회, 연맹 등으로 이어지는 ‘같이 술 마시고 형님, 동생 하며 잘 지내는 의리의 카르텔 안’에서 맴맴 돈다. 제보가 있고 문제가 불거져도 재수 없는 사람만 꼬리가 잘린다. 가해자는 폭풍이 지나가면 곧 복귀하거나 다른 곳에서 나타난다.


가령 장애인체육회에서 폭력으로 제명당했는데 대한체육회 수영연맹의 지도자로 복귀를 했다거나 육상에서도 같은 사례가 있었다는 사실은 언론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체육계 성폭력 등을 저지른 범죄자 15명은 학교에서 운동부 지도자로 버젓이 근무하다 감사원에 적발되었다. 폐쇄적 구조가 그들을 만들고 그들은 그 폐쇄적 구조를 더 튼튼히 쌓았다.


스포츠계 폭력과 인권침해는 한 개인의 일탈에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오랫동안 공고히 쌓아놓은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이 만들어낸 괴물이다. 메달 경쟁, 체제 과시, 국위선양의 국가주의 엘리트 체육 정책이 낳고, 연금과 군 면제, 특기자 입학과 같은 자양분을 주고, 만분의 일도 못되는 성공만을 좇도록 환상을 심어주며 꾸준히 살려내 온 괴물이다.


선수들은 메달을 따야 연금과 군 면제 혜택을 얻을 수 있고, 성적을 내야 상급 학교로 진학한다. 이쯤 되면 부모들은 폭력과 성폭력의 고통을 감내하며 지옥같은 올가미를 쓸 수밖에 없다. 보복과 불이익이 두려워 아무 일 없다는 듯 참아내는 것도 사실이다. 감독에겐 우승과 메달이 성과지표이고 여기에 재계약 성사 여부가 달려있기에 엄청난 스트레스로 매달린다.


스포츠과학과 따뜻한 리더십으로 지도하라는 것은 한가로운 사람들의 말솜씨로 여겨지기 충분하다.


결코 합리화될 수 없지만 폭력과 갑질 등 인권침해의 가해자로 거의 절반이 넘는 지도자가 지목받은 이유, 즉 체육계 지도자들이 가해자거나 잠재적 가해자가 되는 근본적 원인은 이 괴물같은 구조 속에 있다.


선수, 부모, 지도자 그 누구도 벗어나지 못하는 괴물, 국가주의 엘리트 스포츠 구조를 해체해야 하고 대한민국 스포츠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낡은 틀 걷어내고 스포츠 문화가 선진국인 나라로 U턴해야


학교체육과 생활체육, 엘리트 체육의 선순환과 스포츠클럽 활성화가 대안이다. 스포츠 강국에서 벗어나 스포츠 문화 선진국으로 나아가야 한다. 체육계와 시민사회에서 이미 던졌던 화두이다.


이런 얘기라도 할라치면 곧이어 국민이 사랑했던 스타 선수들이 나서거나 그들을 내세워 ‘엘리트 체육 죽이기’라는 프레임을 덧씌운다. 장본인은 다름아닌 대한체육회와 시·도체육회, 각 종목별 연맹 또는 협회 등이다.


국민 세금 4천억 원을 쓰는 대한체육회와 국가 체육 예산의 세배쯤 되는 4조 원이 넘는 시민 세금을 쓰는 시· 도체육회는 대한민국 스포츠의 변화 요구에 화답해야 한다. 올림픽과 국제 스포츠 외교 업무는 대한올림픽위원회(KOC)로 분리하고, 대한체육회는 학교·생활·엘리트 체육의 선순환과 스포츠클럽 활성화, 스포츠로 건강하고 행복한 대한민국을 위해 목적을 바로 잡고 목표를 수정해야 한다.


매년 여는 전국체전 같은 엘리트 스포츠 경쟁시스템은 3~4년마다 바꿔 개최하고 대신에 전 연령대 종목별 스포츠클럽 대회는 시·도를 순환해서 시민들의 준비와 참여로 개최해도 좋다. 엘리트 경쟁 중심, 메달 중심, 성적 중심에서 시민 참여 중심으로 시·도체육회가 추구하는 가치도 변해야 한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돈 주고 선수 사고파는 소모적인 경쟁시스템을 위해 시민 세금을 축내야 하는가? 시·도체육회의 모든 에너지를 전국체전과 도민체전 등에 다 써버릴 것이 아니라 일상적, 대중적으로 시민이 참여하는 스포츠 사업이 주가 되도록 체육회 통합정신을 찾아내야 한다. 이는 엘리트 스포츠 정책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저변의 선수들도 없는 비인기 엘리트 종목까지 살려내는 스포츠계 구조개혁임을 눈치채야 한다.


기득권과 오래된 카르텔로 막아서고 있는 구태의 사람들과 그들이 떠받치고 있는 낡은 엘리트 중심 스포츠 구조는 폭력, 성폭력, 갑질, 인권침해를 끊임없이 재생산해내는 괴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글을 쓴 허정훈은 ‘운동선수 자기관리’를 주제로 스포츠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 후 현재 중앙대학교 스포츠과학부에서 강의하고 있다. 체육시민연대 공동대표와 서울시체육회 학교체육 위원장, 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 집행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서성우 / 체육시민연대 사무국장



2016년 4월 3일, 한국 쇼트트랙 국가대표 노진규 선수가 골육종으로 투병 중 세상을 떠났다. 故 노진규 선수는 2013년 9월 개인병원에서 왼쪽 어깨뼈에 종양을 발견하고 골육종의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을 들었으나 K대학 A의사에게 세 차례에 걸쳐 골육종이 아닌 거대세포종 진단을 받고 “악성일 가능성이 낮으니 내년 2월 동계 올림픽이 끝나고 종양을 제거하자”, “경기 출전이 가능하다“ 등의 소견을 받아 다시 훈련에 돌입하였다. 그 후로도 종양은 계속 커져만 갔고 여러 차례 수술과 치료를 병행하다 끝내 숨졌다. 직접 사인은 골육종이었다. 이 꽃다운 청춘의 죽음은 불가피했던 것일까. 운동선수들의 부상투혼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정서가 의사 소견에 투영된 건 아닐까 하는 의문에 의학 논문데이터베이스(KMbase)에서 골육종에 관한 자료를 탐색하였다.

오진이나 진단 지연의 확률이 있고 오진이 초래할 위험이 크다면 대회 출전여부를 따지기 전에 정밀한 진단과 치료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았을까. 의사가 그를 운동선수이기 이전에 평범한 스물 셋 청년으로 바라봤다면 종양 제거를 내년으로 미루자고 말할 수 있었을까. 2020.05.18. 수술도 미뤘다...아파도 아프지 않은 권한진의 '부상 투혼’ 2020.01.14. ‘부상 투혼’ 김연경 “모든 것 걸고 싶어 진통제 맞고 뛰었다” 2020.03.27. '부상투혼' 손흥민, "통증 느꼈지만 팀 돕고 싶었다“ 운동선수는 왜 자신의 안위를 등한시하고 팀(국가)을 위해 희생하면서 부상을 감내하는가? 이는 ‘선수라면 마땅히‘라는 필행(必行)의 관습이 스포츠에서 규범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포츠에서 ‘부상투혼’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팀(국가)의 승리를 위해 피를 흘리거나 뼈가 부러져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경기에 몰입하는 모습은 투혼과 희생, 도전이라는 단어로 미화되어온 것이 현실이다. 승리에 대한 강박관념, 지도자의 지시에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문화 등이 그들의 행동을 강제하는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관습은 선수가 부상 이후에 충분한 휴식과 치료 없이 복귀하는 현상을 초래하여 선수생활을 단축시키고 선수들의 자기결정권을 상실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선수들의 부상투혼 이면에는 비출전이 초래할 손실에 대한 두려움, 주전 경쟁에서의 패널티, 주요타자들에 대한 미안함 등에 대한 압박이 숨겨져 있으며 이러한 관습과 반인권적 상황은 운동만이 살 길이라고 인지하는 선수들의 인식과 맞물려 구조적으로 뿌리내리게 되었다. 유독 스포츠에서 고통과 인내를 강요받고 반인권적 상황이 재생산되는 이유는 일상적인 삶에서의 행위는 대체로 엄정한 기준에 의해 제어되는 반면 스포츠의 행위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정의할 수 없고 다수가 옳다고 인정하는 사회적 규범에 의해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에서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져도 인내하는 것을 스포츠 정신으로 해석한다면 선수들은 부상, 은퇴, 나아가 죽음의 위험까지도 직면할 수 있으며 故 노진규 선수 사례와 같은 희생이 반복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선수들이 승패를 위한 도구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며 선수인권보호를 위한 구성원 모두의 노력과 국내 스포츠가 지향해야 할 올바른 방향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강정호는 2010년대 KBO 리그 최고의 유격수이자 역대급 유격수 계보의 일원이다. 또한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최초의 한국인 야수로, 2015년과 2016년 피츠버그 파이리츠 소속으로 엄청난 활약을 펼치면서 국보급 타자 반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무려 3회의 음주운전 적발과 자기범인도피교사를 저지르면서 프로 경력이 중단되었다가 2018년 말에 겨우 복귀했으며 시즌 중간에 방출되었다. 그런 그가 2020년 4월 29일 기준으로 KBO 리그 복귀를 선언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본인이 한국에서 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미국에서 돌아온 강정호를 공항에서 맞이한 50여명의 취재진이 처음으로 던진 질문이다. 그는 끝내 답하지 않았고 변호사를 통해 “죽는 날까지 후회하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겠다“, “야구로 보답하고 싶다”등의 입장을 밝혔다. 강정호는 상벌위원회를 통해 1년 유기실격 및 봉사활동 300시간의 징계를 받았고 이르면 내년부터 KBO리그 무대를 다시 밟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순히 한 선수를 영입하는 문제나 야구 종목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강정호가 다시 국내 무대로 돌아와서 팀의 승리를 가져오고 관중의 환호를 받는다고 생각해보자. 스포츠에서 윤리적인 문제가 있어도 결과적으로 승리한다면 모든 것이 용인될 수 있다는 귀결은 프로선수, 지도자, 아마추어(학생)선수의 가치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기량이 뛰어난 운동선수는 죄를 지어도 다시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례를 제공함으로써 죄의식의 부재를 초래하고 스포츠인이 갖추어야 할 바람직한 성품에 대한 인식을 저해하여 도덕적 무감각을 야기할 수 있다. 결과론적으로 故 노진규 선수와 강정호 선수의 사례는 스포츠에 대한 윤리의식 부재가 원인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는 스포츠 분야에서 선수들의 인권과 인성 교육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할 필요성을 제공한다. 선수들의 인권과 안전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며 승리만을 목적으로 하여 선수의 인성이 등한시되는 사회구조로부터 탈피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된다. 2020.06.12 체육시민연대

*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1657642 **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6365889


​체육시민연대 SNS

  • 페이스 북 사회 아이콘
  • 유튜브 사회 아이콘

서울시 서초구 효령로 230 승정빌딩 407호

TEL : 02-2279-8999  /  FAX : 02-2289-8999

COPYRIGHT© 체육시민연대. ALL RIGHTS RESERVED.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