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운동장을 일방적으로 철거하려는 서울시 정책에 대한 반대를 선언합니다.
무릇 어떤 일을 시작함에 있어 신중을 기하라는 의미로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조언을 자주 하곤 합니다. 그러나 첫 단추를 잘못 꿰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 경우는 대체로 적습니다. ‘어쩌지, 어쩌지’ 하며 주저할 시간에 단추를 풀고 처음부터 다시 꿰는 일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오는 11월 일방적으로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공원을 조성하고 디자인월드프라자를 건립하겠다고 합니다.
축구, 야구, 수영 등 우리나라 근대스포츠의 출발점이자 정치, 사회·문화적으로 가치를 지닌 역사적 공간이며 940개 점포가 넘는 풍물시장 상인들의 삶의 터전으로서의 동대문운동장의 가치는 이미 내팽개쳐 놓은 지 오랩니다.
오직 동대문운동장을 부수고 그 일대를 세계적인 디자인·패션산업의 중심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과욕의 단추를 계속 꿰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서울시와 KBO, 대한야구협회 등 관계자들은 마치 자신들이 주인인 양 동대문야구장을 철거하는 대신 7개 대체구장 건립을 조건으로 양해각서를 체결했습니다. 동대문야구장에서 꿈을 이룬 유명 선수들, 그 꿈의 무대를 밟고 싶어 하는 유망주들, 수십 년 동안 야구를 통해 희로애락을 함께한 수천만 야구팬들의 동의와 의견은 무시한 채 말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양해각서에는 신설구장 건립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물론 서울시장, KBO총재, 대한야구협회장의 서명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각서 내용대로 이행이 되든 안되든 누구에게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휴지조각에 불과할 뿐입니다.
현재 동대문운동장 내 풍물벼룩시장에는 940개의 점포가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2003년 청계천 복원 사업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동대문운동장으로 내몰린 노점상 들입니다. 그러나 전임 시장의 ‘세계적인 풍물시장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만 믿고 이곳으로 온 상인들에게 지금 와서 이들을 불법 노점상 출신 운운하며 ‘축구장으로 이전한 조치는 한시적인 것’이라며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서울시는 각종 언론에 ‘동대문 풍물시장 발전협의회’를 구성, 이를 통해 상인 이주대책 문제가 원만히 진행되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으나 풍물벼룩시장 상인들을 분열시키려는 음모이며 어떠한 대책도 논의된 바 없습니다. ‘세계적인 풍물시장’ 약속은 나 몰라라 권리가 없다느니, 배려해줄 만큼 배려해줬다느니 하면서 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서울시가 과연 시민의 일꾼인지 의문스럽습니다.
올해 문화재청에서는 동대문운동장에 관한 ‘근대문화유산 조사보고서’를 통해 동대문 쪽 성벽은 복원되어야 하고 동대문운동장은 해방 이후에도 우리 시민사, 정치사와 직접 관계되는 장소이기 때문에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결국 문화재청은 동대문운동장을 우리 근대사에서 건축적인 측면 뿐 아니라 역사·문화적으로도 큰 가치를 지닌 장소로 평가하고 있음에도 최근 서울시와 협의를 통해 동대문운동장 전광판과 스탠드 일부만을 남기고 모두 철거하기로 합의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루 수십 명 지나다니는 간이역이나 돌담길, 최초의 자장면집도 문화재로 지정된다는데 80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또한 수천만 명이 다녀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체육시설인 동대문운동장은 왜 문화재가 될 수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동대문운동장을 아끼고 사랑하는 국민여러분!
동대문운동장의 주인은 누구이며 누구를 위해 철거한다는 말입니까.
동대문운동장은 1925년 지어진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체육시설로서 82년 동안 우리나라의 체육사, 정치사, 문화사를 함께한 공간입니다.
조선후기 수도방위사령부격의 훈련도감 최대 병영이 있었던 자리이고 식민지 시절 암울했던 조선인들의 울분을 달랬으며 해방 이후 군중집회 장소로, 역대 대통령 대중연설을 비롯 중요한 역사적 행사들이 벌어진 곳입니다. 또한 동대문운동장을 거치지 않은 축구, 야구선수는 거의 없을 정도로 스포츠 스타의 산실이었고 지방 선수들에게는 꿈의 구장이며 현재까지도 아마야구의 메카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대문운동장을 찾아 경기를 관람하며 희로애락을 함께한 인원만 헤아려도 수천만 명이 넘습니다.
이렇듯 수많은 이들의 역사와 꿈을 품은 동대문운동장을 서울시와 KBO, 대한야구협회, 문화재청 등이 합의해서 철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들은 동대문운동장의 주인이 아닙니다. 동대문운동장이 길러낸 스포츠 스타들, 그들의 경기가 좋아서 무작정 쫓아갔던 이들, 동대문운동장에서 한번이라도 뛰어보고 싶은 야구 꿈나무들과 사회인 야구 회원들, 청계천에서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온 풍물벼룩시장 상인 등 동대문운동장에 대한 역사와 추억, 그리고 삶의 터전을 갖고 있는 모든 이들이 진정 동대문운동장의 주인입니다.
동대문운동장에 대한 공동의 추억을 가진 이들의 동의와 의견수렴도 없이 서울시장의 강북도심부활 프로젝트, 몇몇 야구 관계자들이 약속한 7개의 대체구장, 문화재청의 소견 등을 이유로 일방적인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주인과 객이 뒤바뀌어도 한참 뒤바뀐 상황입니다.
이에 우리는 충분히 교과서에 기록될만한 역사·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고 생계를 꾸려가는 상인들의 삶의 터전이며 국민과 선수의 희로애락을 함께한 공동의 추억과 꿈을 간직한 공간인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려는 서울시 정책에 반대하며 동대문운동장을 수호하기 위한 노력에 온 힘과 정신을 쏟을 것입니다.
서울시는 명심해야 합니다. 국민들은 동대문운동장 철거를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 과밀한 도심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원 조성에 찬성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요구 역시 서울시의 공원화 사업과 디자인월드프라자 건립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건축기술을 토대로 동대문운동장 보존을 기본 원칙으로 리모델링 작업을 해서 시즌 중에는 경기장으로, 평소에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개방형 운동장으로 변모시키자는 것입니다. 변변한 스포츠 박물관 하나 없는 형편에 100년 근대체육의 성지인 동대문운동장을 한국 체육사를 기념하는 사적 공원으로,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전통문화를 자랑하는 세계적인 풍물거리로 재탄생 시키자는 것입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최근 취임 1주년을 맞아 오세훈 서울시장은 언론을 통해 ‘사정해서 공무원을 만나는 시대는 갔다’고 했습니다. 사정하지 않고 정식으로 요청합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결정권도 없는 관련자를 통해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사업 설계에 외국 전문가들까지 초청한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일이라는 일방적이고 무책임한 답변으로만 일관하지 말고 동대문운동장 수호를 위한 모든 주체들과 직접 만나 진지한 논의를 처음부터 다시 해주기 바랍니다.
객들과 합의해서 동대문운동장을 밀어버리고 공원화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애초부터 잘못 꿴 단추를 풀어버리고 지금부터라도 동대문운동장의 가치와 활용방안에 대해 진정한 주인들과 함께 논의하면서 잘못 꿴 단추를 처음부터 다시 꿰는 아름다운 타협과 양보의 모습을 보여주기 바랍니다.
이러한 우리들의 상식적이고 정당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동대문운동장 철거반대와 수호를 위해 체육인, 문화인, 건축인, 연예인, 역사가 등 전문가와 문화연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 전국빈민연합, 전국노점상총연합, 체육시민연대, 한국축구지도자협의회,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등 시민단체가 힘과 지혜를 모아 끝까지 싸울 것을 다짐하며 서울시에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하나, 오세훈 시장은 동대문운동장 일방적 철거 계획을 즉각 중단하고 전면 재검토하라.
하나, 오세훈 시장은 근대최초의 체육문화시설 동대문운동장을 역사유적으로 보존하라.
하나, 오세훈 시장은 풍물시장과 노점 상인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대책을 즉각 마련하라.
하나, 오세훈 시장은 무책임한 KBO, 대한야구협회와의 양해각서 체결을 즉각 철회하라.
하나, 오세훈 시장은 동대문운동장 관련 우리들과의 면담에 즉각 응하라.
2007년 8월 20일
동대문운동장 철거반대와 보존을 위한 공동대책위
100인 선언 참여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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