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학교에서 선생님을 대상으로 ‘스포츠분야 인권교육’을 마치고 나오는데, 어느 분께서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데....”라고 말씀을 하시며 제 옆을 지나가십니다. 마음은 무겁고 뒤통수는 뜨끈뜨끈하고 천근만근의 무게를 가슴에 얹고 돌아왔습니다.
빨래는 세탁기가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세탁을 세탁기가 합니다. 세탁물을 옮기고 세탁기에 넣고 세탁기의 기능이 끝나면 꺼내서 널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람의 움직임이 있어야 합니다. 반듯이 알아야 할 것은 그 세탁물의 주인이 누구이고, 세탁기 기능 외에 움직임을 하는 사람은 누구냐는 것입니다. 자신의 세탁물을 자신이 직접 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거절을 할 수 없는 사람,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말할 수 없는 사람, 동의를 온전하게 실현할 수 없는 사람) 부탁을 가장해서, 시킨 것 이라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없는 행위입니다.
부탁과 강제적 시킴의 행위 구분이 어려울까요?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 차이가 어떠하게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진행했던 ‘스포츠분야 인권교육’의 내용에서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스포츠 인권침해 실태조사 결과 중 대학교 운동선수 인권실태 조사결과를 이야기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원하지 않는 각종 심부름, 빨래, 청소를 대신 한 적이 있다(29%),’, ‘부당하게 자유시간, 외출, 외박을 제한 받은 적이 있다(26%)’, 헤어스타일, 메이크업 등을 제한 받은 적이 있다(25%) 순으로 빈번했음
- 생활통제의 가해자는 ‘심부름, 빨래 등’의 경우 선배가 주 가해자였으며, ‘자유 시간·외출·외박 제한, 헤어스타일 등 제한의 경우’ 코치가 주 가해자였음 」
국가인권위원회는 ‘자기결정권 제한 등 생활통제’로 명시했습니다.
자기 자신의 세탁물을 세탁하는 빨래에 대해서 사람들은 언제쯤 학습하게 될까요? 저는 초등학교 고학년쯤 부터였습니다. 그리고 아주 어려서부터는 자기가 스스로 해야 하는 지극히 사적인 일에 대해서 배우며 자랐습니다.
저는 ‘암묵적 위계구조, 그 닫혀진 섬’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기숙사에서 “타인의 빨래를 왜 내가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는 성인이고 거절을 하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거절을 표현할 수 없는 관계, 말할 수 없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는 문화, 구조를 갖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분위기와 누군가 내게 계속적으로 원하지 않는 것을 시켜도 말할 수 없고, 비동의를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문화 속에서 머물고 있는 권력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통제하고 제한하면서 자신들의 지극히 사적인 일조차 자신의 손으로 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당연하게 말합니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데....” 세탁기의 기능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물론 아주 어린 영아기의 아동은 모르겠지만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어린이도 알 수 있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말하는 어른, 무엇이 잘못이라고 꼬집어 이야기해야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세세하게 설명해야 알게 된다면, 어른이 아니라 무엇을 배우기 시작한 걸음마의 아이로 표현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권력이라는 단어 속에서 그 하등의 쓸모 없는 노예적으로 사람을 부리려는 사람에 대한 존중 없는 사고가 인식이 그 닫혀 진 섬을 만들었고, 여전히 변화하고 싶지 않으려는 비인권적 행위입니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그 모든 행위는 시키지 않고 자기가 스스로 알아서 합니다.”로 바꾸어 말해야 합니다.
오늘도 저는, 스포츠현장이 성적만이 아니라 웃고 즐기면 자신의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고 그 땀에 박수를 보내는 ‘스포츠는 인권이다’가 실현되길 바라며 스포츠분야의 인권교육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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