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학생선수를 대상으로 한 인권 실태 조사에서 전체 학생선수의 78.8%가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경험했다는 결과의 보고서를 발표한 국가인권위원회는 성적지상주의와 엘리트 중심의 체육정책이 그 주요 원인이라고 꼬집은 바 있다. 공부는 안하고 운동만 하는 학생선수, 성인만 있는 취미활동 수준의 생활체육 현장, 체격에 비해 체력은 현저히 낮은 청소년, 점점 고갈되고 있는 엘리트체육 자원,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학교체육의 위기는 실로 한국체육의 총체적 위기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위기를 더욱 고착화 시킬 우려가 있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15일 대한체육회가 이사회를 열어 현행 대한체육회 특별위원회로 규정된 대한올림픽위원회(KOC)를 대한체육회와 통합하여 ‘대한올림픽체육회’를 출범시키자는 방안을 결의한 것이다. 나흘 전 자체 설문조사 결과를 근거로 같은 내용의 공청회를 열고 12, 13일 천안에서 체육계 구조개편 논의에 대처하기 위한 임직원 조직활성화 교육을 실시하더니 급기야 15일 이 같은 결정을 한 것이다. 게다가 조만간 대의원총회를 소집해 이를 최종결정한다고 한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참으로 기민한 행보가 아닐 수 없다.
대한체육회와 KOC의 분리 문제는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협의회의 통합 문제와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2002년 국민생활체육협의회의 법인화를 위해 이강두 의원이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체육단체 통합과 분리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고 수년간 이 논쟁은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협의회의 입장차이만 확인하는 수준에 그쳐 체육계 내부의 갈등만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아 왔었다. 그런데 대한체육회는 이렇게 수년간 대립과 반목의 진통을 겪으면서도 오직 한국체육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체육단체의 통합과 분리를 진지하게 논의해왔던 수많은 체육인과 정부의 노력, 그리고 오랜 체육계의 염원을 며칠 사이에 무참히 짓밟고 만 것이다.
무엇보다도 체육단체의 구조개편은 일방적인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논의의 분명한 대상이 있음에도 이를 철저히 배격했고 특히 KOC의 분리를 전제조건으로 내걸긴 했지만 국민생활체육협의회는 두 단체의 통합을 줄곧 천명해왔고 이연택 회장 역시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혀왔음에도 일방적으로 대한체육회와 KOC의 통합문제를 결정한 행태는 위기에 처한 한국체육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커녕 국민생활체육협의회는 물론 수년간 체육단체 구조개편을 열망해 온 체육계 전체를 무시한 안하무인격 처사의 결정판이다.
대한체육회 정관에는 ‘본회는 체육운동을 범국민화 하여 학교체육 및 생활체육의 진흥으로 국민의 체력향상과 건전하고 명랑한 기풍을 진작’시키겠다는 설립목적이 있다. 이처럼 대한체육회가 국내체육 모두를 아우르는 조직임에도 본연의 업무는 방관한 채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줄 수 엘리트 체육에 역량을 쏟아 부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업무의 중복을 피하고 효율적인 조직운영 운운하며 대한체육회, KOC, 국민생활체육협의회의 완전한 통합을 논의하는 공청회까지 최근에 개최했다고 한다. 너무나 이율배반적이고 졸렬하다. 결국 이는 가시적인 성과에 급급했던 기존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도와 체육단체 통합과 분리 과정에서 인위적인 직원 감축 등 구조조정을 피하기 위한 궁색한 집단 이기주의의 표출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체육단체 구조조정은 대한체육회, KOC, 그리고 국민생활체육협의회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 진행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체육단체 통합과 분리에 대한 모든 논의가 이러한 대전제를 바탕으로 진행되어 왔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대한체육회는 부디 국가인권위원회가 지적한 체육계 인권유린 문제와 공부안하는 학생선수, 엘리트체육의 자원고갈 문제, 학교체육의 위기,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의 비이상적인 단절 등 숱한 체육계 문제가 바로 지금껏 그네들이 보여 온 성과주의에 급급한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단체운영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기 바란다.
최근 선수수급에 있어 큰 애로를 겪고 있는 대한체육회는 국민생활체육협의회와의 통합이 단순한 조직 간의 결합이 아니라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이 한 틀에서 작동되어 풀뿌리체육의 저변으로부터 우수한 선수자원이 발굴되는 유일한 활로임을 명심하고 아울러 KOC를 분리시켜 국가대표급 선수들의 체계적 훈련과 국제대회 파견, 스포츠외교의 전문성을 높이게 해야 한다. 그 길만이 대한체육회가 ‘체육운동을 범국민화하여 학교체육 및 생활체육의 진흥으로 국민의 체력향상과 건전하고 명랑한 기풍을 진작’ 시키겠다는 본연의 목적을 달성할 것이고 숙엄한 정관에 부끄럽지 않는 길일 것이다.
이에 체육시민연대는 시대착오적이고 이기적인 결정을 한 대한체육회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대한체육회와 KOC를 통합하겠다는 독선적인 이사회 결정 즉각 철회하라!
하나, 체육계를 무시하고 KOC 통합 운운하는 시대착오적인 대한체육회는 공개 사과하라!
하나, KOC 분리와 대한체육회, 국민생활체육협의회의 통합에 국회는 즉각 나서라!
2008. 12. 17.
체육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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