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소위 말하는 한국 엘리트체육, 특기자제도의 특혜를 받고 선수 생활을 했고 국가 대표 출신으로서 국내외 지도자 생활을 거쳐 온 사람입니다.
저는 선수 생활을 시작한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에 지각하거나 수업 중간에 훈련하러 가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해 왔고, 어떤 의문을 품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가 되어 선수촌에 입촌한 이후부터 학교 생활은 전혀 하지 않았을 정도입니다. 당시에는 학교 생활보다는 국가 대표, 국제 대회 메달, 올림픽 출전이 훨씬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고 인생 최고의 목표로 생각했습니다.
그 후 참으로 오랜 시간이 흘러 현재가 되었지만, 지금도 학생 선수들의 생활은 저의 어린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도 거의 모든 학생 선수들은 새벽부터 잠들기 전까지 훈련에 매달려 살고 있고 어려서부터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만을 갖고 생활 중입니다.
물론 자신의 종목에서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누구보다 부지런히 자기 능력을 닦는 것은 칭찬 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린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 선수들까지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 또한 지나보니 그 시기에만 누릴 수 있었던 평범한 일상, 교우 관계 등 모든 것을 포기했더군요. 더구나 그 시기에 공교육을 통해 배워야 했던 필수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성인이 되어 평범한 사람들과 대화할 때 부족한 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진로가 어려서부터 한 길로 정해지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입니다. 자라면서 여러 관심사가 생기고 여러 활동에 참여해 보면서 스스로 자신의 진로를 탐색할 기회를 가져야 하는데 실제로 학생 선수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진로가 한 길로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학생 선수들은 모두 김연아, 손흥민 같은 국제적으로 손꼽히는 선수가 되길 소망할 겁니다. 저 역시 그래왔으니까요. 하지만 그만큼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는 정말 극소수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언젠가는 운동을 그만두게 되는 선수들이 대다수입니다. 그 많은 선수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저 역시도 나이가 들어 기량이 전 같지 않아 23살에 은퇴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그 또래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취업을 하거나 그를 위한 배움에 힘쓸 때, 저는 막막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운동 말고 다른 일은 해 본 적도 없고 그에 대한 정보도 없었으니까요. 제가 어려서 학교생활도 하고 운동 이외의 삶도 누리고 있었다면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어려서부터 무한경쟁 사회에 던져진 학생 선수들은 친구 개념이 별로 없습니다. 또래에 대해 평범하게 우정을 나누고 교류하는 대상이라기 보단 경쟁 상대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인간관계를 맺어가며 사회성을 키워야 할 시기에 너무나 한정적인 관계만을 맺게 되고, ‘학생 선수’라는 수식어가 붙으면서 또래 중에 자신이 특별하다는 생각도 갖게 됩니다. 사회성 형성 시기에 길러져야 할 기본적인 사회성이 결여될 수밖에 없지요. 저 또한 자라면서 혼란을 겪었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거기에 끊임없는 성적 비교.. 이 부분은 일반 학생들도 힘들어하는 부분이겠지만 선수들에게는 오로지 하나의 길 뿐이기에 그 시합 성적에 모든 인생이 걸려 있습니다. 과열되는 경쟁과 성적에 대한 압박감.. 체육계에서 드러나는 여러 폭력 사건들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가치관이 정립되고 사회성이 형성되는 시기에 있는 어린 학생 선수들에게 학교 수업과 운동의 병행이 필요하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을 했더니, 혹자는 ‘시합 준비도 해야 하고 국제대회도 나가야 되는데 운동에 전념해야지 수업을 듣는 건 시간 낭비다. 게다가 운동도 힘든데 수업까지 들으라는 건 학생 선수 인권 침해다’라고까지 이야기합니다. 오히려 기본적인 학습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건 학생 선수들 아닌가요? 주객이 전도된 느낌입니다.
제가 살면서 겪어 온 시행착오와 충격을 지금의 학생 선수들이 조금은 덜 겪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학생 선수들이 부디, 좀 더 좋은 환경에서 학업과 운동을 행복하게 병행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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